이야기2013. 1. 14. 21:03
9개월여의 파견 생활 후, 현업으로의 복귀.
여러가지로 어색하고 불편하다.
비판적 시각을 공유하던 사람들과 하루의 대부분을 지내다가, 순응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 데서 오는 어색함.
눈치 볼 필요가 별로 없었던 생활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불편함.
소속이 분명한 상태에서, 소속이 이중적으로 바뀌면서 오는 불안정함.
이러한 상태는 지속될 것이다. 피하려 하지는 말자. 적응하자. 다른 동료들이 지난 1년 동안 겪었을 이 상황이, 나에겐 잠시 유예되었던 것일 뿐.
예의 있게 행동하되, 비굴하지는 말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토양] 아버지와 어머니 (2)  (0) 2013.01.16
[나의 토양] 아버지와 어머니  (0) 2013.01.15
축구공  (0) 2013.01.07
새해 계획  (1) 2013.01.03
텍스트를 화자의 삶과 연결시켜 읽기  (0) 2013.01.02
Posted by 미완성조각
이야기2013. 1. 7. 06:30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사는 모습은 축구공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육각형 또는 오각형의 조각들은, 다른 조각들과 한 면씩 접하여 연결되어 있다.
즉, 나와 아무리 친밀한 조각이라 해도 그 한 면만이 나와 접하는 것이고, 다른 면들은 또다른 조각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떠올리는 것은, 결코 독점적인 관계는 있을 수 없다는 것과, 부부나 연인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일면만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어, 집착이나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토양] 아버지와 어머니  (0) 2013.01.15
복귀  (0) 2013.01.14
새해 계획  (1) 2013.01.03
텍스트를 화자의 삶과 연결시켜 읽기  (0) 2013.01.02
2012.12.31  (0) 2012.12.31
Posted by 미완성조각
이야기2013. 1. 3. 06:11
올해는 새해 계획을 구체적으로 정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제 저녁 술자리에서 새해 계획이 뭐냐길래,
이렇게 답했다.

1. 책을 많이 읽는 것. 일주일에 한 권이면 좋겠지만, 거기까진 안 되더라도 가능한 많이 읽는 것.
2.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는 것.

덕분에 새해 계획 세웠다. 허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귀  (0) 2013.01.14
축구공  (0) 2013.01.07
텍스트를 화자의 삶과 연결시켜 읽기  (0) 2013.01.02
2012.12.31  (0) 2012.12.31
노동운동의 방향성 - 금전적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개선된 사업장의 경우  (0) 2012.12.28
Posted by 미완성조각
이야기2013. 1. 2. 07:18
잘은 모르지만, 구조주의적 철학에서는 텍스트를 화자와 분리하여 읽는 것을 추구하는 듯 하다.
그런데 그렇게 읽는 것이 학문적으로는 유의미할 수 있으나, 객체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전체를 이룬다는 관점에서 보면, 텍스트는 다른 객체와의 연결 통로로 기능하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보며, 이를 위해서는 텍스트를 화자의 삶과 연결시켜 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최근에 드는 생각이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구공  (0) 2013.01.07
새해 계획  (1) 2013.01.03
2012.12.31  (0) 2012.12.31
노동운동의 방향성 - 금전적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개선된 사업장의 경우  (0) 2012.12.28
"왜 공부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  (0) 2012.12.28
Posted by 미완성조각
이야기2012. 12. 31. 15:38

아웃사이더. 보헤미안. 리차드 바크. 생떽쥐페리. 디아스포라. 

근래의 내가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 또는 그 범주. 

Posted by 미완성조각
이야기2012. 12. 28. 11:18

노동운동의 방향은, 사용자(또는 자본)으로부터 더 많은 돈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노동운동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임금을 개선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 당시 자본의 통제 방법은 강제에 의한 억압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영역에서 근로조건과 임금이 개선된 지금 - 물론 아직도 그러지 못한 노동자들이 훨씬 많다. 고쳐 말하면, 많은 것이 개선된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 새로운 방식의 자본의 통제에 저항해야 한다. 그 새로운 방식이란, 개개인의 끝없는 욕심과 경쟁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며, 돈을 차등 보상함으로써 스스로 굴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 같으나, 인플레이션은 지속되고 있으며, 직장에서 퇴출될 경우의 사회적 안전망은 너무나 취약하다. 우리가 이러한 환경에서 진행해야 할 노동운동은, 더이상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본의 교묘한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대안은 직장 내에서의 과도한 경쟁과 서열화 및 이에 따라 차등 보상하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 고용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 더 많은 급여를 요구하기 보다는 물질 이외의 행복을 직장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모든 노동자시민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을 위해 노력하는 것 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012.11.14.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텍스트를 화자의 삶과 연결시켜 읽기  (0) 2013.01.02
2012.12.31  (0) 2012.12.31
"왜 공부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  (0) 2012.12.28
대선을 생각하며  (0) 2012.12.12
2012.11.30.아침  (0) 2012.11.30
Posted by 미완성조각
이야기2012. 12. 28. 10:27

<2011.5.12일 일기>

회사라는 것이,

별다른 자각 없이 있다가는,

충직한 개가 되기 딱 좋은 곳이다.

직급이 올라갈 수록,

보낸 시간이 길어질 수록,

점점 더, 충직한 개가 되어 간다.

언제부터인가 "개인"인 인간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진다.

문득, 개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긴다.

내가 개가 되면,

나를 따르는 이들도,

개보다 못한 인간이 되지 않겠나.

 

 

저 때만 해도, 내가 노동조합 간부가 될 거라고 생각지는 못했었다.

생각이라는 것은, 또 그 생각을 적어본다는 것은,

미래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지금, 나는 2년이 남은 노동조합 간부 임기 동안,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

노동조합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 시점에 내가 바라는 사회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다.

내가 바라는 회사 또한, 다양성이 존중받는, 그래서 구성원이 행복한 회사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총체다. 조합원의 일반적 의식과 바람을 많이 앞질러 갈 수는 없다.

노동조합의 집행간부로서 나는, 내가 바라는 회사, 또는 내가 생각하기에 올바른 방향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일반적 의식과의 갭이 있다면,

그 갭을 줄여나가는 것이 먼저다.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되, "나"의 인간으로서의 유한성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나의 시야는 제한적이며, 망각으로 인해 인식의 일관성과 깊이에도 한계가 있다.

공부의 목적은, 전체로서 연결되기 위한, 다른 조각들과의 소통에 있음을 잊지 말자.

내가 조합간부로서의 책임감에서 공부를 한다면, 그 목적은 계몽이나 선동이 아니라, 일반적 의식의 이해와 확장에 있음을 기억하자.

Posted by 미완성조각
이야기2012. 12. 12. 19:21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정말로 실패한 정권이었나...?
노무현 정부 시절, 언론에서 쉴새없이 제기되었던 비판에 수긍은 가지 않았으나, 어느 시점이 지나자 그 비판에 이의를 제기하면 마녀사냥을 받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모든 정권은 일부분은 성공하고 일부분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판단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이를 판단하고 있는가?
우리를 실망에 빠뜨리고 정치에 대해 비관하게 만든 것은, 과연 우리 스스로의 자유로운 의지였는가?
모든 정권은, 아주 오랜 과거부터 현재까지,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냥 비관하고 등을 돌리는 것은 적절한 선택이 아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하고, 그나마도 없다면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성공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실패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길이다. 사실, 최선은 역사책에나 존재하는 것일 지도 모르니까.

- 2012.12.11.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Posted by 미완성조각
이야기2012. 11. 30. 08:32

이상을 꿈꾸고, 우주를 탐구하더라도,

두 발은 땅을 딛고 걷자.

Posted by 미완성조각